◇ 날적이

회사란 무형의 존재가 형태를 띄게 될 때(1)

아맹꼬 2021. 8. 19. 2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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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살 12월 선배의 소개로 이력서를 넣고 면접을 보고 합격해서 양재의 한 회사에 입사했다.
그곳에서는 다음해 4월까지 다녔다.
짧은 기간 다녔지만 쎈 에피소드가 있었던 곳이다.
입사 한달만에, 그것도 바로 전 주 토요일에 명함을 대학 동호회 사람들에게 나눠주고 온 후의 월요일에 사장님이 나를 부르더니 넌 여기랑 맞지 않는것 같다며 나가라고 했다.

그때의 회사는 벽이었다. 나를 몰아내는 그런 벽.

나가란 소리를 듣고 자리로 돌아왔는데 옆자리 대리님이 icq라는 메신저로 무슨일이냐 묻는다. 사실대로 말하고 가방을 꾸리는 중이었던가. 사방에서 타닥타닥 키보드 소리가 들린다. 솔직히 내 이야기를 주고받는다는 게 뻔했고 그게 너무 짜증났다.
좀 지나서 나보고 있어보라고 하더니, 며칠동안 출근은 하되 회사 주변에서 있으라고 그러더라. 커피숍이니 뭐니에 가있었던 것 같다. 가끔 회사사람들이 번갈아가며 나를 보러 왔었다.
그리고 복직되었다고 하며 다시 회사로 나오랬다.
면접은 과장님들이 봐서 뽑은 사람인데 왜 사장님 마음대로 자르냐는 이유였다.

그 때의 회사는 글쎄다. 회사와 사람들이 분리된 순간이었다. 회사는 곧 사장이었다. 돈이 없어서 서울역에 나앉을 수도 있다고 하던 사장(말은 그렇게 했지만 한번도 그런 적 없이 잘 살고 계신다고).


대부분 나보다 먼저 그만둬서 내가 나중에 중진공 홈페이지를 구축하는 마무리 일을 했지만 그마저도 4월에 종료.


23살 12월에서부터 24살 4월까지의 내 첫번째 회사에서 있었던 일이다.



이 때부터 회사란 무형의 존재가 살아움직여 나에게 소속감을 주기도, 빼앗기도 하는 그런 힘을 가진 유형의 존재로서 살짝 각인되었던 것 같다.
힘을 가진 자가 그 형태를 만드는 데 일조를 한다는 것까진 아직 생각치 못했을 때.


덧. 양재까지 다녔었는데 사람들이 거의 밤샘을 하던 시절이라 나도 그렇게 살았었다. 아무 생각없이 그래야하는 줄 알았다.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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