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小小독서

3.아주 편안한 죽음/시몬 드 보부아르

아맹꼬 2022. 1. 18. 1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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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의 타계 이후 죽음, 노년에 대한 책에 눈길이 많이 간다. 부정하고 싶지만 언젠가 엄마도, 시부모님도, 나도 죽을거니까.
특히 이 책은 엄마의 마지막과 나의 모습을 그려볼 수 있어서 몰입감이 있었다.
1964년에 씌여진 글이지만 2022년 현재 병원의 환경이나 죽어가는 환자를 대하는 모습은 여전하다. 다 그런것은 아니겠지만 여전히 고압적이며 기계적으로 환자의 생명을 연장시키려하는 의사들과 지쳐있는 간호사들.
코로나로 인해 임종조차 지키지 못하는 현실이 더해져 죽음은 순식간에 스쳐지나가는 듯 하다.
죽음 이후는 더욱 기계적이다.
어머니와 서서히 화해하는 장면들이나 간병하는 장면들이 내 미래의 것들이려니.
보부아르의 어머니의 죽어가는 과정이나 마지막 모습이 실상 편안하다 여겨질 수 있을까 싶지만 고통스러운 순간 이마에 손을 얹어준 존재가, 마지막을 함께 한 존재가 있었단 이유로 편안한 죽음으로 귀결되는구나.

애들을 위해서라도 남편보다 내가 먼저 죽어야 한다고 말하곤 하는데 내 소망대로 된다면 내 이마에 남편의 손이 얹어질 것이라 위안이 되면서도 정작 남편의 이마엔 누구의 손이 얹어질까 걱정이 된다. 아들들이 아빠의 애틋함을 기억한다면 두 아이의 손이 있게 되겠지. 둘이 한꺼번에 손이 필요해진다면 아이들에게 너무 가혹한 일이기에 될 수 있으면 순서대로..

해설서를 보면 난 겉에 보이는 내용으로 내 경험을 밀착시켰었구나. 이게 실존에 대한거야? 놀랐다. 보부아르의 글을 처음 접해서 그런 것이야라고 변명하고 싶어도, 그녀의 글을 수차례 본다고 달라질 것은 없을것이므로.. 그렇구나 할수밖에.

한가지 격공하는 부분은 이름으로 불리는 것의 중요성에 대한 내용이다. 누구의 아내, 엄마가 아닌 한 이름을 가진 개체로 인정된다는 것.
내가 언제까지 무직, 주부로 지내게 될 진 모르겠지만 그간은 내 이름은 감춰지게 될 것이다. 순간, 나이들어 일부로라도 친구를 만나는 이유가 이름이 불리는 개인으로 돌아갈 수 있어서가 아닐까란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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