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小小독서

5.소크라테스익스프레스/에릭 와이너

아맹꼬 2022. 2. 24. 0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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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번 엄독클럽에서 김약국과 딸들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남긴 글에 소.익을 언급했더니 에릭와이너 작가가 좋아요를 눌러줘서 깜놀했던 기억이 있다. 이번에도 살짝 기대를 해볼 수 있을까?
// 이건 인별. 내용.  그냥 기록용으로 삭제 안함

소크라테스부터 몽테뉴까지.. 한사람 빼고 한번씩은 이름을 들어본 사람들이다. 이왕 읽은 김에 기억을 돕고자 마음에 드는 문장들을 적어봤다. 5페이지가 나왔다. 시몬 베유에서의 내용이 제일 많다. 니체가 제일 짧다. 대신 아이와의 일화를 곁들여 별도로 글을 작성했군.

세이 쇼나곤 땐 두가지 의문이 생겼다.
저자가 일본에서가 아니라 한국에 머물렀다면 과연 누구에 대해 썼을까?
또, 쇼나곤이 죽은 뒤 몇세기나 흐른 니체의 주의를 따른다고 쓴 건 번역의 오류일까, 아니면 이것 또한 서양철학의 우선주의인가.
두번째 의문이 생기고 난 후 쇼나곤에 대한 글이 사실 잘 들어오지 않았다.

김영하북클럽 라방 당시 사람들이 간디와 소로에 대해 놀랐다고 해서 꼭 읽어봐야지 했던 내가 좀 우스워졌다. 그들의 일화는.. 짧았고 임팩트있지 않았다. 스포 당해서 그런걸까?

나의 관심인 노년과 죽음. 보부아르와 몽테뉴에서 뭔가를 찾은 기분이 든다. 사실 어떤 책이든 읽고 난 즉시엔 뭔가 찾은 것 같지만... 금세 잊는다.
다시금 기억하기 위해 힌트를 적어놔야겠다.
친구, 관계에 대한 글
우린 살아있기 때문에 죽는것이다.

몇권의 책들 덕에 아이들이 아주 어릴때 가졌던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좀 작아졌다. 책 뿐만 아니라 아이들의 성장도, 나의 나이듦도 한 몫 했겠지. 거기에 아빠의 죽음. 그리고 생각.
몽테뉴 시절엔 죽음을 여기저기서 경험할 수 있었단다. 우리가 죽음과 거리를 둔 건 사실, 얼마 안되기도 했다. 다행스럽게도 난 그 시절에 태어난거고. 홀로코스트 속에서 자란 아이가 평화의 시대 속에서 한 사람이 죽은 것에  대해 떠들썩한 것에 대해 이해하지 못한 것처럼 주변에 죽음이 많으면 뭔가 무덤덤해질 것 같은데 또 그런 중 죽음에 대한 정의를 내리려 무진장 애쓴 거 보면 그렇지도 않은가보다.

저자의 글 쓰는 방식이 뭔가 내 리뷰와 비슷하다고 느껴진다(고 우겨봄).
철학자에 대해, 철학에 대해 이야기 쫌 하다 자신의 생각 혹은 자신의 상황을 이야기한다. 늘 요점에서 벗어난 리뷰를 쓰는 건가 했는데 마음의 위안을 받았다. 우히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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