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을 보는 내내 아이를 어떻게 키워야 하나 걱정이 되었다.
다 읽고 나서도 답은 없다. 여전히 걱정만 된다.
어느 장에서는 답이 보이는 듯 하다가 그 다음으로 넘어가면 이정표가 사라진 길을 가는 것마냥 답답했다.
아까는 보였던 그게 도대체 어디갔느냔 말이야.
하지만.. 알고 모르고의 차이는 천양지차일 것이다.
그래서 수 클리볼드는 책으로 아들의 이야기를 하려고 한 것이겠지.
개인적으로 에릭의 부모의 이야기도 보고 싶다.
...
간혹 그런 짓을 한 아이를 어떻게 사랑할 수 있어? 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 것 같다.
나는 큰 아이 훈육 후에는 (매번은 아니지만) 너를 미워해서 혼내는 게 아니라 너의 잘못된 행동이 싫어서 혼내는 것이다. 엄마아빠는 너를 무척이나 사랑한다 라고 이야기해준다.
수가 끊임없이 이야기하는 딜런에 대한 사랑은 이런 맥락이리라 생각된다.
그건 부모만이 알 수 있는 이야기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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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181
나는 괴롭힘과 공격의 대상이 되었다는 사실에서 엄청난 수치심을 느꼈어요. 제가 직접 경험해보아 아는데 아이들은 자기가 겪는 고통을 자기 탓으로 돌려요. 나도 사람들이 나를 이렇게 대하는 건 나한테 뭔가 문제가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어요.
엄마 아빠가 나를 자랑스럽게 여기길 바랐어요. 무슨 일이 있었는지 이야기하면 부모님도 내가 보는 내 모습으로 나를 보시게 될거라고 생각했어요. 문제가 있고 못생긴 아이로요.
p182
딜런에게도 이런 일이 있었어야 해요. 친구나 동지가 옆에 있어줬어야 했는데. 분노와 우울을 부추기는 게 아닐나 달래줄 친구요.
이건 아셔야 해요. 부모님은 그 친구가 되어줄 수 없다는 걸요. 형 바이런도 마찬가지고요. 성장과 분리 과정에 있기 때문에 감춰왔던 고통스러운 문제를 부모나 형제자매에게 털어놓기는 극히 힘듭니다.
p233
언론에서 베르테르 효과를 인지했기 때문에 많은 목숨을 구할 수 있었다. 자살로 인한 죽음, 특히 십대의 자살은 언론에 거의 보도되지 않는다는 걸 느꼈을 것이다. 우연히 그렇게 된 것이 아니라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와 미국정신보건원에서 강조하는 지침을 따른 것이다. 두 기관 모두 언론보도를 제한하고 절제하면 목숨을 구할 수 있다고 말한다.
이 지침에 따르면 반복해서 미화하거나 선정적으로 보도하지 말고 자살의 원인을 단순하게 설명하려 해서는 안 된다. 자살 방법을 생상하게 논하지 말아야 한다. 유서를 보도하지 말아야 한다. 죽은 장소, 장례식, 슬퍼하는 유가족의 모습 등도 자극적일 수 있어 피해야 한다.
p258
조이너 박사는 사람이 두 가지 심리적 상태를 꽤 오랫동안 겪으며 살았을 때 자살로 죽고자 하는 욕망이 생겨난다고 한다. 첫째는 좌절된 소속감(나는 혼자야)이고 둘째는 스스로를 짐이 되는 존재로 생각하는 것(내가 없으면 세상이 더 나아질거야)이다. 이런 사람들이 자신의 보존 본능을 넘어서는 단계에 들어선다면(나는 죽는 게 두렵지 않아) 위험이 임박했으며 자살을 저지를 수 있다고 본다.
그러니까 죽고자 하는 욕망은 첫 번째와 두 번째 심리 상태에서 나온다. 자살을 수행할 수 잇는 능력은 세 번째 요인에서 나온다.
p273
첫 번째는 이 연구에서 살펴본 십대 총격 가해자 서른네명 가운데 25퍼센트가 짝을 이루어 움직였다는 점이다. 대체로 혼자 움직이는 성인 학살 난동자와 다른 점이다. ... 두 번째 사실은, 전형적으로 두 아이 중 한 명은 사이코패스이고 나머지 한 명은 영향을 쉽게 받고 의존적 성향이 있고 우울에 시달린다는 점이다.
p275
딜런은 잭이나 네이트, 로빈이나 다른 친구들과 같이 나가기 싫을 때에는 그냥 이렇게 말했다. "이번 주말에는 안 돼. 숙제해야 돼." 그런데 에릭을 거절할 때만은 내 도움이 필요했던 것이다. 그때는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았고 딜런에게 "그냥 싫다고 하면 안 돼?"라고 물을 생각도 못 했다. 딜런이 나에게 도와달라고 하는 게 현명하게만 보였는데, 나중에야 무언가 훨씬 위험스러운 일의 조짐이었다는 걸 깨달았다. 너무 늦은 뒤에야 알아차렸던 것이다.
p309
따링 전보다 더 잘 울고 많이 매달리고 소아과의사가 아무 이상이 없다고 하는데도 알 수 없는 통증을 호소하기는 했다. '나 배 아파. 머리 아파.' 딸은 잘 시간이 되어도 자지 않으려고 했다. '이 장까지만 읽고. 5분만 더 있다가 잘게.' 그런데 아빠는 이런 모습이 이 나이대 아이들의 우울증 증상일 수 있다는 건 상상도 하지 못했다.
p311
이게 역설 가운데 하나다. 우울에 시달리는 십대 아이들이 상냥하게 자기 생각을 잘 이야기한다면 도와주기도 더 쉬울 것이다. 우울증 안내 책자 사진처럼 깔끔하고 예쁘장한 외모에 주먹으로 턱을 괴고 슬픈 듯한 눈으로 비 내리는 창밖을 내다보는 아이라면 말이다! 하지만 어려움을 겪고 있는 아이는 막상 만나면 불쾌할 때가 많다. 공격적이고 호전적이고 무례하고 화를 잘 내고 적대적이고 게으르고 짜증을 내고 솔직하지 않고 위생 상태도 썩 좋지 않을 때도 있다. 하지만 이렇게 까다롭고 다른 사람을 밀어내려고 하는 아이들이 누구보다 다른 사람의 도움이 필요한 아이들이기도 하다. 사실 이런 성향이 도와달라는 신호일 수도 있다.
p322
비극적 사건으로부터 몇 년이 흐른 뒤에 대기실에서 육아 잡지를 펼쳤는데 "윤리적 육아" 퀴즈가 나와 있었다. 질문 열 개에서 내가 고른 답이 한 문제만 빼고 전부 "옳은 선택"이었다. 틀린 문제는 아이의 사적인 일기를 읽나요?였다. 육아 잡지에서 말하는 맞는 답은 "아니오"였다. 딜런이 살아 있을 때에는 나도 그렇게 대답했을 것이다. 그렇지만 지금은 그렇게 대답할 수 없다.
아이들 방을 뒤지고 일기를 읽는다면 아이들이 배신감을 느낄 위험이 있다. 하지만 아이들이 스스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를 감추고 있을 수도 있다.
p349
부모는 자기 아이를 잘 안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자기가 낳아 기른 아기라도 전혀 모르기 십상이다. 그렇기 때문에 문제다. 안됐지만 누가 사이코패스 거짓말쟁이인지 부모도 나만큼이나 오리무중이다.
p401
자살은 병이 아니라 선택이라는, 옳지 않지만 끈질긴 믿음 때문일 것이다.
p410
아이가 어린 시절에 있었던 일을 들려주었다. 같은 반 아이가 점심값을 계속 훔쳐갔다고 한다. 계속 밥을 굶기 싫어서 결국 아버지한테 이야기했는데, 아버지가 빈 욕조에 던져 넣고 더 못 버틸 때까지 허리띠로 때렸다고 한다.
아버지는 "네 문제를 네가 해결 못하고 나한테 들고 오지 마라!"라고 했다. 여자아이는 다음 날 갈퀴 손잡이를 들고 학교에 가서 자기 돈을 훔쳐가던 아이를 때렸다. 그 뒤에는 아무도 건드리지 않았다고 한다.
"아버지가 저한테 준 최대의 도움이에요." 내가 충격받은 얼굴로 샌드위치를 내려놓는 걸 보고 여자아이는 재미있다는 듯이 말했다.
.. 그 이야기를 들었을 때에 나는 아버지가 아이를 학대했다고 생각했지만 그 아이는 사랑과 존경이 담긴 말투로 이야기를 했다. 아이는 아빠가 자기를 잘 키웠다고 생각했고 실제로 아버지는 아이가 그들이 사는 거친 환경에 잘 대처할 수 있게끔 가르쳤다.
.. 아마 누구나 지식과 자원의 한계 내에서 최선을 다하는 건지도 모른다.
p419
설교하는 대신 귀를 더 많이 기울였더라면 좋았을 것이다. 할 말이 없을 때 내 생각과 말로 빈 공간을 채우는 대신 말없이 같이 앉아 있었더라면 좋았을 것이다. 딜런의 감정을 달래려고 하는 대신 인정해주었더라면, 뭔가 느껴질 때에 '피곤해요. 숙제가 있어요' 같은 핑계로 대화를 피하더라도 받아들이지 않았더라면 좋았을 것이다. 어둠 속에 딜런과 같이 앉아서 딜런이 걱정하지 말라고 해도 걱정이 된다고 끈덕지게 말했더라면 좋았을 것이다. 다른 모든 걸 다 버리고 딜런에게 집중하고, 캐묻고 다그쳤더라면, 내가 보지 못했던 것을 볼 수 있을 정도로 밀착했더라면 좋았을 것이다.
p428
살인-자살 유족은 비극의 동인이 자살이라고 생각하지만 대중은 그런 행동을 오직 살인으로 바라본다. 우리가 살인-자살이 자살의 한 형태라고 보고자 하는 까닭은 자살 방지가 살인-자살 방지이기도 하다는 걸 알리고 싶기 때문이다.
p436
무릎을 다치면 걸을 수 없을 지경이 될 때까지 병원을 찾지 않고 내버려두지는 않을 것이다. 관절에 얼음찜질을 하고, 다리를 높이 괴고, 운동을 쉬다가 며칠 지나도 차도가 없으면 정형외과에 간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정신건강 문제에 있어서는 진짜 위기가 닥치기 전에는 병원을 찾지 않는다. 아무도 다친 무릎을 의지와 용기로 낫게 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정신의 고통에 대해서는 낙인을 피하려고 스스로 벗어날 방법을 찾으려고만 한다.
p469 (옮긴이의 말)
육아책 등에서 당연하게 '보통 아이'를 상정하고 이야기하기 때문에 우리는 아이들은 모두 다르다는 것을 잊고 아이를 바라볼 때가 많다. 아이들은 이 세상에 존재하는 다양한 어른들만큼이나, 아니 아직 사회화가 덜 되었으므로 그 이상으로 다양하고 개성 있는 존재들일 것이다. 그런데 아이를 키우면서 우리는 '아이들은 다 그래', '십대들이 그렇지', '남자/여자아이들은 원래 그래' 이런 말을 수도 없이 듣는다. 그런 식으로 불안을 잠재우며 아이를 설명하여 얼추 비슷한 존재로 그려나가기 때문에, 아이를 '보통 아이'의 틀에 맞추어 바라보고 잘 크고 있는지 판단한다.
.. 이 책이 일깨우는 것도 모든 부모들이 운명공동체라는 인식이다. 아이가 어릴 때 '내가 잘 키우고 있나?' 걱정했던 것과는 전혀 다른 종류의 불안을 일깨운다. 내가 어떻게 해야 하느냐 하는 고민 때문이 아니라, 아이가 행복한지 안녕한지에 나의 존재가 위태로이 직결되어 있음을 깨달았기 때문에 닥쳐오는 실존적 불안이다.
.. 세월호 유가족들에게 등을 돌린다고 상처를 덮을 수는 없다. 불편하고 듣기 싫은 이야기일 수도 있지만, 불행과 고통에 대한 공감을 넓힐수록 아이들의 삶은 안전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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